목회자 편지
| 편지 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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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주님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4월 30일부터 1박 2일의 일정으로 온 식구가 미시간 앤 아버에 다녀왔습니다.
큰 딸 민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밤 늦게 도착 민지를 만나 다음 날 식장에 들어갈 입장권을 pick-up한 후.
그곳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모텔에 들어서니 시간은 벌써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5시간 정도를 좁은 차 안에서 보내 피곤한 몸이었지만,
낯선 곳이어서인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채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7시까지는 앤 아버에 다시 와야 한다는 민지의 성화 때문이었습니다.
집으로 갈 짐 일부를 싣고 졸업식장에 9시까지 도착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도착해 굵은 빗줄기 속에서 막내와 함께
대여섯 뭉치의 짐과 씨름하며 트렁크에 꾸겨넣고나니 비 맞은 생쥐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셔틀이 온다는 장소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기다렸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셔틀 버스는 올 줄을 몰랐습니다.
9시까지 식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안내지의 문구 때문에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서,
긴 줄을 빠져나와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졸업식이 열리는 풋볼 경기장을 향한 긴 행렬 속에 끼어 걷다보니 셔틀에 대한 불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풋볼 경기장 밖에서 식장 안으로 들어가는데도 씨큐리티 검사 때문에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축사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 때문이었습니다.
간신히 들어가 등받이도 없는 경기장 의자에 앉아 있자니 젖은 몸 위로 쌀쌀한 바람이 닿아 한기가 들었습니다…
충혈된 눈, 물에 빠진 생쥐꼴, 장대비, 쌀쌀한 바람,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 피곤한 몸…
바깥으로 드러난 모양은 이랬지만 마음만큼은 내내 기뻤습니다.
그건 오바마의 연설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졸업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다시 앤 아버를 향했습니다.
나머지 짐과 민지를 싣고 돌아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주일만에 다시 긴 거리를 운전해야 했지만 마음은 기뻤습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딸이 집으로 온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토요일 새벽 이번엔 민희 짐을 싣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향했습니다.
이사가는 학생들이 많아 차를 먼 곳에 주차시키고
기숙사를 몇 차례 오르락 내리락 하며 끙끙대며 짐을 옮겼지만 마음은 흐뭇했습니다.
사랑하는 둘 째 딸도 집으로 돌아와 모처럼 온 가족이 두 달 정도를 함께 지내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즐거운 신기한 경험을 하는 동안 한국에 계신 어머님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님이 나와 동생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식들을 향한 사랑때문이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무겁게 마음에 담겨왔습니다.
어머님의 사랑의 크기와 내 사랑의 크기를 비교하는 순간 참 부끄럽고 죄송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나직이 속삭여 보았습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하나님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셨지만,
그 고통을 참으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워졌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뭐 대단하다고…’
‘나’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셔야 할 이유를 한 가지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족한 ‘내’가 십자가 사건을 믿고 구원의 문을 통과했을 때,
하나님께선 잔치를 벌이시며 ‘드디어 내 자녀가 돌아왔구나’ 하시며 기뻐하신 겁니다.
어떤 저울로도 잴 수 없고, 어떤 표현법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그분의 사랑 앞에서 그저 숙연해졌습니다.
이 귀한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100% 담고 살지 못했던 순간들이 생각나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가만히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사랑엔 사랑이 최고의 보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