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두란노침례교회 새벽기도 예배 묵상 자료입니다.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글수 42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선 야곱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본문에도 야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먼저 야곱이 하란의 땅에 잘 도착하게 하시게 하십니다.
그곳에서 라헬을 만나게 하시고 외삼천 라반으로 하여금 야곱의 말을 믿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사실 라반에게 야곱은 탗선 청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야곱의 말을 전적으로 다 믿고 14절에 ‘너는 참으로 나의 골륙이로다’는 고백이 라반의 입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가정도 그곳에서 꾸리게 하십니다. 그것도 라헬과 레아 두 자매를 한꺼번에 아내로 맞게 됩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이외의 다른 축복을 보면서 귀한 교훈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야곱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신 겁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7년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장막 안에서 그것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야곱에게 가축을 키우는 들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축복하셔서 7년 동안의 그 긴 세월을 수일로 여기도록 만들어 주신 겁니다. 그 축복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라헬을 사랑했기에 7년이면 그녀를 아내로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야곱은 정말 기쁨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전 이런 축복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임하시길 원합니다.
제가 세미나 참석을 위해 윌로우 크릭 처치에 간 적이 있습니다. 평일이었는데도 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세미나 참석자들을 위해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세미나가 끝날 때쯤에 진행하시는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3일간 열심히 여러분들을 섬겨주신 자원 봉사자들께 감사의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약 500명의 성도들이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 감동했습니다. 자신의 직장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저들이 봉사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답이 하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이 머리가 되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답인겁니다.
전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이런 사랑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은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지칠 수는 있지만 지겨울 수는 없습니다. 일이 많아 힘들 수는 있지만 기쁨을 빼앗아 갈 수는 없는 겁니다. 자녀를 위한 섬김, 배우자를 위한 섬김, 사업장을 위해 흘리는 땀, 교회를 위한 봉사와 헌신, 이 모든 것을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감당한다면 이 모든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을 것이고, 늘 열매를 거두는 그런 일이 될 겁니다. 그렇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지금 당당하고 있는 모든 일의 진정한 동기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할 하나님의 축복은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하신 겁니다.
우리는 야곱이 외삼촌에 속은 사실을 축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속임을 당한 야곱의 마음이 참으로 아팠을 겁니다. 그리고 화도 났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26절에서 라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야곱은 속임수를 써서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 모두를 빼앗은 장본인이었습니다. 야곱은 이 말 한 마디에서 자신이 형에게 잘못한 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이렇게 속임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를 깨달으면서 형의 분노와 아픔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레아와 라헬이 바뀌는 일을 통해서 야곱의 잘못된 성품을 바꾸어 가고 계신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축복이십니다.
하나님께선 야곱을 그냥 그렇게 놔두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질 않았습니다. 야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가시기 위해 때로는 우리를 아프게도 하시는 겁니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픔이 없이는 발견할 수 없는 잘못도 많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 동안 습관처럼 살아와서 이제는 아무런 감각도 없이 저지르는 죄가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아픔과 고통을 통해 다루어주시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불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만 바꾸면 그건 분명 하나님의 축복인 겁니다. 축복이 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편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오는 것이 아님을 이 사건 속에서 꼭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된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망치 때로는 끌을 대셔야만 하는 겁니다. 그 아픔을 잘 인내하고 그속에서 나 작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 후에 만들어진 잘된 인격과 성격을 보며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할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오늘도 세상에 들어 가시면서 이 두 가지의 교훈을 함께 들고 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한 삶이 되실 겁니다.
먼저 야곱이 하란의 땅에 잘 도착하게 하시게 하십니다.
그곳에서 라헬을 만나게 하시고 외삼천 라반으로 하여금 야곱의 말을 믿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사실 라반에게 야곱은 탗선 청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야곱의 말을 전적으로 다 믿고 14절에 ‘너는 참으로 나의 골륙이로다’는 고백이 라반의 입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가정도 그곳에서 꾸리게 하십니다. 그것도 라헬과 레아 두 자매를 한꺼번에 아내로 맞게 됩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이외의 다른 축복을 보면서 귀한 교훈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야곱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신 겁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7년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장막 안에서 그것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야곱에게 가축을 키우는 들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축복하셔서 7년 동안의 그 긴 세월을 수일로 여기도록 만들어 주신 겁니다. 그 축복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라헬을 사랑했기에 7년이면 그녀를 아내로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야곱은 정말 기쁨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전 이런 축복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임하시길 원합니다.
제가 세미나 참석을 위해 윌로우 크릭 처치에 간 적이 있습니다. 평일이었는데도 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세미나 참석자들을 위해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세미나가 끝날 때쯤에 진행하시는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3일간 열심히 여러분들을 섬겨주신 자원 봉사자들께 감사의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약 500명의 성도들이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 감동했습니다. 자신의 직장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저들이 봉사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답이 하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이 머리가 되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답인겁니다.
전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이런 사랑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은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지칠 수는 있지만 지겨울 수는 없습니다. 일이 많아 힘들 수는 있지만 기쁨을 빼앗아 갈 수는 없는 겁니다. 자녀를 위한 섬김, 배우자를 위한 섬김, 사업장을 위해 흘리는 땀, 교회를 위한 봉사와 헌신, 이 모든 것을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감당한다면 이 모든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을 것이고, 늘 열매를 거두는 그런 일이 될 겁니다. 그렇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지금 당당하고 있는 모든 일의 진정한 동기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할 하나님의 축복은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하신 겁니다.
우리는 야곱이 외삼촌에 속은 사실을 축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속임을 당한 야곱의 마음이 참으로 아팠을 겁니다. 그리고 화도 났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26절에서 라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야곱은 속임수를 써서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 모두를 빼앗은 장본인이었습니다. 야곱은 이 말 한 마디에서 자신이 형에게 잘못한 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이렇게 속임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를 깨달으면서 형의 분노와 아픔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레아와 라헬이 바뀌는 일을 통해서 야곱의 잘못된 성품을 바꾸어 가고 계신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축복이십니다.
하나님께선 야곱을 그냥 그렇게 놔두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질 않았습니다. 야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가시기 위해 때로는 우리를 아프게도 하시는 겁니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픔이 없이는 발견할 수 없는 잘못도 많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 동안 습관처럼 살아와서 이제는 아무런 감각도 없이 저지르는 죄가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아픔과 고통을 통해 다루어주시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불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만 바꾸면 그건 분명 하나님의 축복인 겁니다. 축복이 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편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오는 것이 아님을 이 사건 속에서 꼭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된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망치 때로는 끌을 대셔야만 하는 겁니다. 그 아픔을 잘 인내하고 그속에서 나 작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 후에 만들어진 잘된 인격과 성격을 보며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할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오늘도 세상에 들어 가시면서 이 두 가지의 교훈을 함께 들고 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한 삶이 되실 겁니다.

